제 11회 종근당 예술지상
회화, 사물과 사건의 이해자(理解者)
김노암
흐름과 경향
회화는 시각예술의 왕좌에 있지만 언제나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1,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 추상미술과 다다의 등장으로 예술 개념과 표현의 획기적인 변화 속에 회화의 개념과 형식도 더 다양하고 복잡한 변화를 겪었다. 21세기를 가로지르면서는 전지구적 정보화 사회와 디지털문화가 만들어낸 세계상의 급격한 변화가 회화의 역할과 의미를 본질적으로 변화시켰다. 현대사회의 탈종교화 또는 세속화의 큰 흐름 속에 회화는 인간의 실존적 의미를 성찰하고 경험하는 중요한 예술형식으로 이해되고 있다. 회화는 인간의 정체성과 실존의 문제, 개인의 심리와 마음 나아가 정신이라는 내면으로 더 깊이 그리고 멀리 나아간다. 회화는 사물과 사건의 가장 중요한 표현형식이자 이해자로 여겨진다.
어떤 주제나 소재, 스타일이건 화가들에게 익숙하고 내면화되는 것, 동시에 가장 민감하게 다뤄지는 것은 ‘물성’이다. 우리 미술계에서 ‘물성’이란 말은 매우 형이상학적으로 다뤄지는데, 사실 작가의 신체활동에 관계하는 모든 것들과 연결되며 존재 전체성을 온몸으로 동일시하고 느끼는 상태를 생각할 수 있다. 물감과 캔버스와 붓과 몸의 근육과 신경과 감각이 총체적으로 작동하며 미시적이면서도 동시에 거시적인 통합된 감각을 통틀어 말하는 것이다. 손 끝의 촉각에서 그리고 눈의 미묘한 시각을 통해서, 또한 후각의 섬세하면서도 풍부한 감각을 통해서 전존재를 느끼는 것이다. 감각적이면서 동시에 사유가 뒤엉킨 몰입상태, 일종의 명상을 떠올려도 좋다. 이번 종근당예술지상 기획전 초대 작가들의 회화를 통해 우리는 현대 미술의 또 다른 길, 또 다른 세계와 접촉한다. 가늠할 수 없이 복잡하게 변화하는 현대 회화의 경향성을 느낄 수 있다.
회화에서 표현성을 제외하고 나면 남는 것이 무엇일까? 기성 회화에 반발하며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미술가들은 한결같이 회화 또는 예술의 본질에 직접 다가가려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미술의 역사 속에서 본질로부터 벗어나려고 시도한 작가는 거의 없다. 미술가의 본령은 예술의 본질을 향해 전진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술가들이 저마다 주장하는 본질이란 어떤 본질인가. 공통된 보편적 본질의 합의점에 결코 도달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회화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본질의 정체를 잠시 드러내려는 활동이다.
박시월은 타자를 어머니와 등치시키고, 그것을 지렛대 삼아 자신의 사유를 끌고나가며 회화세계를 구축해나간다. 오세경은 초현실적 불안과 공포 또는 예비할 수 없는 사건을 마주했을 때 만들어지는 심리상태와 그 의미를 자신의 스타일로 표현한다. 최수정은 시각적 경험의 미시적인 변화와 섬세한 과정을 추적하며 실재와 이미지의 관계를 추적한다. 이들 초대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예술분야에서 거대담론과 미시담론이 다양한 방식으로 혼융되고 다양한 갈래로 분화해 가는 모습을 경험하게 된다.
회화는 개인에게는 현실과 초현실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형식이다. 더 이상 묘사가 아니며 설명도 아니다. 회화는 과거 미술가들이 추구했던 문제들, 전통적인 주제와 소재들로부터 너무 멀리 나아갔다. 그러나 여전히 선배 예술가들의 성취와 경험은 현재 회화작가들이 변화하는 세계와 문화에 대한 더 정확한 인식과 태도, 존재의 방식을 제시한다. 이번 기획전에 초대된 작가들은 현대 회화의 성격과 의미에 대해 신뢰할 만한 더 많은 서사(敍事)를 제공한다. 현대예술은 ‘나’라는 유일무이한 개인의 존재성에서 출발한다. 감상자가 공감과 이해를 첨부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언제나 감상과 이해를 통해 작가가 비워 놓은 자리를 관객이 채워나간다. 썰물과 밀물처럼 이미지의 파도가 반복된다. 그러나 이미지의 파도는 사실 이미지의 바다가 표현되는 형식이다. 작가들의 개별적 감각과 세계 속에서 우리는 더 깊은 차원의 보편적인 실재을 감지한다.